주일예배

2025년 11월 2일 주일 2부 오전예배, "잃어버린 자의 영성" 누가복음 19:1-10

강호길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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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누가복음 19:1-10

설교제목: "잃어버린 자의 영성"


누가복음 19장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난 이야기입니다(1). 삭개오는 세관장이며, 부자로 소개됩니다(2). 당시 유대인들에게 세리는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돈은 많지만 손가락질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불균형으로 삭개오의 영혼은 아주 불안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3,4). 아마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저 친구는 세리와 죄인과 친구처럼 어울려 지내면서 먹고 마신다"고 퍼뜨렸습니다(눅7:34).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으나 무리에게 가려 볼 수 없었습니다(3). 그러자 뜻밖의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돌감람나무)에 올라갑니다(4). 예수님께서 그런 삭개오를 보시면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집에 묵겠다"(5) 말씀하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예수님을 모셨습니다'(6)  

  한 가지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삭개오의 집까지 따라와서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웅성거립니다(7). 군중들이 그렇게 비판해도 예수님이야 끄덕도 하지 않으셨겠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신 삭개오는 당황스러웠겠죠? 그런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8). 이런 행동은 '회개에 합당한 표시'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일은 아니겠지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재물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1)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9a) - 사실 삭개오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해도 그가 저지른 행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가 세관장이라는 직업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결단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이 임했다는 걸까요? 답은 '오늘'에 있습니다. 구원은 늘 '오늘' 일어납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 보다 지금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삭개오는 지금 물질로부터의 자유, 체면과 명예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그 자유와 해방이 구원입니다. 오늘 그는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0) - 누가복음 15장의 비유가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기쁨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랍다는 말을 하고 감동하지만 실제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의 처지에 떨어지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나요? 그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강력한 도전이자 걸림돌입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자'의 실존에서만 하나님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나겠죠? 잃어버린 자에게만 가능한 하나님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잃어버린'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담임목사 : 김동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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