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26년 0208 태장성결교회 주일 오전예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2:1-12

강호길
2026-02-07
조회수 158


설교본문: 고린도전서 2:1-12

설교제목: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2장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7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설교요약

십자가에 처형 당한 분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 진실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선포한 분이 바울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처형 당했습니다. 당시 십자가에 처형 당했다는 사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조차 버림받았다(고전1:23)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2)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겠다는 바울의 말은 당시 고린도교회의 어떤 신앙 행태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영지주의입니다. 2:1에서 말하는 "훌륭한 말(로고스)과 지혜(소피아)"는 영지주의가 강조하던 것입니다. 영지주의 관점에서 보면 복잡한 세상 문제에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세상은 죄로 물들었으니 관심 가질 필요 없고, 영적으로 순전한 사람이 되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영향을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을 말하면서 우리 삶을 개인 윤리에 제한시킬 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처형 당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거라, 신앙생활 잘 하고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만 말했으면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은 계기가 두 가지 사건입니다. 하나는 안식일과 또 하나는 성전 관련 사건입니다. 안식일에 손 장애인을 고치시고 안식일 논쟁이 생기자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마12:9-12)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하기 시작합니다(마12:14).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냅니다(막11:15-17).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없을 방도를 찾습니다(막11:18). 

 이 두 사건은 예수님이 당시 유대교 종교 이데올로기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저항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 저항에는 구체적으로 '사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가 성전을 종교적 자랑거리로 삼지, 실제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식일이 종교적 체제로만 기능하니 정작 구원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관심은 실종되고, 종교적 허례와 율법적 강제력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체적인 역사적 인간의 삶에 관계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예수'라고만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만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이 역사에서 살았던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즉 인류를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이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 문제를 4-12절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로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12).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어떤 사람은 복음으로 들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똑같은 가르침이 왜 다르게 들렸을까요? 세상의 영으로 보느냐, 하나님의 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은 세상에서 배운 고정관념에 묶인 힘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이 세워가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여는 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본다'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이 계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말은 암흑의 자리에, 절체절명의 자리에 가장 불안한 자리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확인되었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담임목사 : 김동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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