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과 남아 있는 백성에게 전하여라.
3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4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5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바로 그 언약이 아직도 변함이 없고,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6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머지 않아서 내가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어 놓겠다.
7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8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9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바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설교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 재건을 시도한지도 거의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은 지지부진합니다. 추진할 능력이 있는 유대인도 별로 없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시급하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때 학개가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1:1-14). 사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형편을 잘 알기에 성전 재건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학개는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두 지도자에게 선포합니다(2:1). 지도자가 변해야 백성들의 마음도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중요한 신앙을 몇 단계로 나눠서 선포합니다.
두려움 / 4절에서 "이제 힘을 내라(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5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벨론의 포로 신세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와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피폐한 상태입니다. 패배주의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학개도 그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호소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주의 주의 말이다"(4b). 역사적인 사건을 예로 듭니다. 출애굽할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5)고 합니다.
은과 금 / 학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출애굽 사건에 이어 6절에서 더 우주적인 차원에서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국가의 막강한 힘에 비해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두려워합니다. 이에 학개는 그런 제국은 비해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수 있는 분이다. 즉 모든 제국도 하나님의 손안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제국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우주론적 능력 앞에서 모든 인간은 피조물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와 우주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8절에서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네, 은도, 금도 주님의 것입니다. 사람에게 소유는 없습니다. 인생의 연륜이 깊어지면 은과 금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은과 금을 잃을까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영광과 평화 / 4절부터 9절까지에서 "만군의 주의 말이다"라는 말이 여섯 번 반복됩니다. 9절에만 두 번 나옵니다. 그 9절을 보면, 우리 성경에는 '찬란한 성전'이라고 표현하지만 개역성경은 '성전의 영광'으로 표현합니다.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의 표현은 '그 성전에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 영광이 가득하다는 말은 성전에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하는 뜻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주로 평화에서 찾았습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 평화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평화를 알 때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에 벗어날 수 있다고 학개는 외칩니다.
설교본문: 학개 1:15-2:9
설교제목: "두려워하지 말아라"
학개 1장
15 때는 다리우스 왕 이년 여섯째 달, 그 달 이십사일이다.
학개 2장
1 그 해 일곱째 달, 그 달 이십일일에,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였다.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과 남아 있는 백성에게 전하여라.
3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4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5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바로 그 언약이 아직도 변함이 없고,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6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머지 않아서 내가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어 놓겠다.
7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8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9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바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설교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 재건을 시도한지도 거의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은 지지부진합니다. 추진할 능력이 있는 유대인도 별로 없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시급하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때 학개가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1:1-14). 사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형편을 잘 알기에 성전 재건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학개는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두 지도자에게 선포합니다(2:1). 지도자가 변해야 백성들의 마음도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중요한 신앙을 몇 단계로 나눠서 선포합니다.
두려움 / 4절에서 "이제 힘을 내라(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5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벨론의 포로 신세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와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피폐한 상태입니다. 패배주의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학개도 그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호소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주의 주의 말이다"(4b). 역사적인 사건을 예로 듭니다. 출애굽할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5)고 합니다.
은과 금 / 학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출애굽 사건에 이어 6절에서 더 우주적인 차원에서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국가의 막강한 힘에 비해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두려워합니다. 이에 학개는 그런 제국은 비해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수 있는 분이다. 즉 모든 제국도 하나님의 손안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제국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우주론적 능력 앞에서 모든 인간은 피조물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와 우주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8절에서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네, 은도, 금도 주님의 것입니다. 사람에게 소유는 없습니다. 인생의 연륜이 깊어지면 은과 금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은과 금을 잃을까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영광과 평화 / 4절부터 9절까지에서 "만군의 주의 말이다"라는 말이 여섯 번 반복됩니다. 9절에만 두 번 나옵니다. 그 9절을 보면, 우리 성경에는 '찬란한 성전'이라고 표현하지만 개역성경은 '성전의 영광'으로 표현합니다.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의 표현은 '그 성전에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 영광이 가득하다는 말은 성전에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하는 뜻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주로 평화에서 찾았습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 평화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평화를 알 때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에 벗어날 수 있다고 학개는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