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전 세계가 코로나 펜데믹으로 중퇴에 빠진 사람이 얼마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던가? 어느 나라는 코로나로 죽은 사람을 무더기로 한 구덩이에 매장하는, 참혹한 광경을 뉴스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변이종자인 오미크론이 세계를 지배하고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매일 그 수치의 그래프가 계속 올라가 쫄밋쫄밋 무섭다.

시내버스를 타고 보건소 쪽으로 가다보면 코로나 검사 받기 위해 몇 줄로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행렬을 보고 겁이 더럭 났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모든 모임을 내가 다 취소하고 조심하고 있는데 저 자리엔 안 서겠지? 위안해 본다. 그런데……

지난주일(2.20) 오후에 평택에서 작은 딸이 왔다. 방학 끝이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왔노라고. 우리는 딸이 왔으니 얼마나 좋은지 아구찜도 해주고 담엔 탱글탱글한 굴을 듬뿍 넣고 굴밥을 해주니 너무너무 맛있다고 더 달랜다. 딸이 맛있게 먹는 입만 쳐다봐도 마냥 행복하다. 이제 전세도 아니고 삭월세도 아닌 제집을 마련하니 서울 사는 친한 고딩 친구들이 신나서 토요일에 와서 밤새 놀고 아침에 갔단다. 저는 주일예배 드리고 원주 왔다고. 월요일 저녁 굳은 얼굴로 거실로 나온 딸이엄마, 민정이 양성이래.” “?” 기겁을 하고 준비해둔 진단키드로 구연이 부터 검사해 봤다. 빨간 줄 하나 음성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음은 내가했더니 빨간 줄 하나 음성담은 남편. 빨간 줄 하나. 세 식구 얼굴이 모두 환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콧물이 지리릭 흐른다. “이건 뭐람?” 휴지로 쓱 닦아내고 말았다. 대단찮게 생각했는데그것이 씨앗인줄도 모르고.

날이 밝자 마자 딸은 집에 간다고 떠났다.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저녁때 다 죽어가는 음성으로 엄마, 나 양성 이래!” “어구야, 이일을 어쩐다냐? 출근해야 한다며? 혼자서 어떻게 견뎌?” 민정이란 친구 회사에 직원 하나가 양성이 있었나본데 그 애도 그걸 모르고 왔던 것이다.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 그걸 어떻게 다 견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진단키드 해 봤지만 역시 빨간 줄 하나. 음성이다.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내일 아침(2.23) 9시까지 나와서 보건소가자고 하셨다.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입 꾹 다물고 차 탔는데 오만 잡생각이 다 든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검사 받고 집으로 왔다. 딸과 함께 밥 먹고 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잤으니 분명 우리도 양성 일 텐데 성도들 얼굴을 어떻게 보지? 결과는 다음날(2.24) 메시지로 알려왔다. ‘양성’ ‘으극,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코로나 때문인지 음식 잘못 먹은 탓인지 밤새 토하고 몽롱한 상태인데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갈빗대에 심한충격을 받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남편이 보건소에 전화했다. “연락드리면 나오세요.” 아침나절에 했는데 오후 5시쯤 연락 와서 타고 의료원으로 갔다.

다다르니 방호복 입은 간호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불 보따리를 들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 셋이었다. 안내를 따라간 곳은 5층 코로나 전담 병동이었다. 제일 안쪽으로 간호사실이 있고 기다란 복도 한쪽엔 높이 50cm쯤 되어 보이는 하얗고 뚜껑은 주황색인 통이 잔뜩 쌓여 있었다. 반대편으로 생수가 가득 쟁여져있었다. 하얀 통은 환자들이 하루 종일 생활쓰레기 담는 것이고 생수는 항상 복용하라고 일러주고 절대로 문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안내문에 보니 밖에 나가면 벌금이 천만 원. ㅠㅠ 호 되다. 세끼 식사한 플라스틱 그릇은 하얀 통에 분리수거 하 고 통이 가득 채워지면 비닐로 꽁꽁 묶어 밖으로 내놓으라 한다. 밥도 개인별로 비닐에 꼭꼭 묶어 담아서 문밖에 놓고 밥 왔어요.” 하면 환자들이 들고 와서 먹는다. 완전 새장에 갇힌 신세다. 우리 방엔 하루 전에 들어오신 88세 할머니와 나랑 같이 들어간 84세 할머니, 62세 요양보호사랑 나 네 명이 한방을 썼다. 침대 하나가 비어있어 5인실이었다. 병실은 의료원 처음 시작 할 때 건물이라 낡고 지저분했지만 그걸 따질 형편인가? 근데 복도만은 근현대적으로 그럴싸하게 깨끗하게 단장했다. 옛날과 현재가 공존하는 병실과 복도의 모습이었다. 병실의 문들은 굳게 닫혀있고 방호복 입은 간호사들만 들락거린다. 코로나로 입원한 환자는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러 곳에 분산돼서 수용한다한다.

모두들 자기 침대에 가 물건정리 하고 앉았는데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모두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그 날은 그냥 자고 아침에 간호사가 피 뽑고 액스레이 기사가 문 앞까지 그 큰 기구를 끌고 와 사진을 찍고 갔다. 집과 병원에서 이틀 동안 기침가래로 힘들었지만 열은 나지 않았다. 저녁에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폐렴기가 좀 있는데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간호사가 준 약을 먹고 참 신기하게도 기침과 가래가 많이 가라앉았다. 남편은 하루 딱 기침하고 약도 안 먹고 끝인데 난 이틀을 기침과 씨름하고 많이 호전되었다. 집에서 부딪힌 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해 주위 분들에게 죄송했다. 같이 입원한 요양보호사가 세 어르신들의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어 편하게 생활했다. 집에 배달 음식 오면 플라스틱 용기를 따기 얼마나 힘든가? 여덟 가지나 되는 그릇을 일일이 따주고 쓰레기 분리수거해주고 물병도 얼마나 꼭 닫혔는지 나도 못 따겠는 걸 다 해결해주었다. 어디가나 천사는 있는 모양이다. 의사들이나 왕 언니 간호사들은 절대 병실에 안 들어온다. 피 뽑고 엑스레이 찍은 걸로 모니터링해서 약 조제해주고 전화상담해서 환자 체크한다. 코로나로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대면하지 말라는 국가적인 시책인지도 모른다. 주사도 없고 약으로만 치료한단다.

딸은 이틀을 아주 몸살이 심한 듯 많이 앓았단다. 다행이 여선생님들이 매일매일 문고리에 음식이랑 과일을 매달아 놓고 가서 먹는 건 풍부했다고 한다. 교회에서도 온갖 과일을 예쁘게 포장해 환자 집집마다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셨다고한다. 큰 교회니 코로나 걸린 사람도 엄청 많은가보다. 정말 다행이고 고마웠다. 서서히 기운을 차리고 출근했다한다. 학교 갔더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일 끝나고 전화할게 엄마.” 그 애의 바쁜 손길이 눈에 선하다

어제는 엄마가 입원했다하니 제 탓이다 싶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죄송해요. 엄마, 죄송해.”를 연발하며 동영상을 보냈다. 하지만 어디 제 탓인가?“괜찮어 엄마. 너나 정신 차리고 근무해. 엄마아빠 아무이상 없어.”

입원한지 일주일(3.2)만에 퇴원했다. 같은 방에 네 분이 있었는데 나와62세 요양보호사만 나오게 되었다. 많이 죄송스러웠다. 86.88연세인 그분들은 얼른 나아 퇴원 하세요.” 라는 저희들의 말에 눈만 여느 때처럼 꿈뻑거리실 뿐이었다. 그분들은 어제부터 링거를 맞기 시작하였다. 어디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같이 퇴원할 줄 알고 짐까지 싸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퇴원하는 방식도 복잡했다. 방독마스크. 비닐코트, 비닐장갑을 끼고 11시에 맞춰 방호복차림의 간호사의 안내로 엘리베이터 앞에 갔다. 각 병실에서 퇴원하는 분들이 모이니 네 명. 함께 5층인 코로나 병동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밝은 햇살이 싱그러웠다. 내가 언제 이런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던가 싶다. 가슴을 펴고 깊은 숨 호흡을 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의 기분이 이럴까? 경계선 넘어 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입고 나온 물건들을 휴지통에 벗어던지고 간호사 손에 들려있는 약제 봉투를 모두 받아들었다. 금액은 자부담이라 문자가면 송금하라 했다. 꾸벅 인사하고 그야말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차를 가지고 오겠다는 조카나 친구들 말도 고마웠지만 시간도 가르쳐 주지 않고 택시타고 집에 오니 너무 편했다. 환하고 아늑한 내 집이 너무 좋아 한 바퀴 죽 둘러보았다. 변한 건 없는데 남편이 눈물을 글썽글썽 하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 “당신혼자 고생시켜서.” “참나. 괜찮 수!”

1월에 터키 선교사로 간 아들네가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경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세 식구는 3차 접종을 했어도 여섯 살 난 손녀 다은이는 안 맞은 상태였다. 이틀 동안 열이 펄펄 끓고, 기침하고 눈도 잘못 뜰 지경 이어서 링거 맞고 약 먹고 삼일 만에 엄마, 나 유치원갈래요.”해서 며칠만 더 있다가야 한다고 다독였다한다. 백신도 안 맞은 손녀가 그 정도면 정말 은혜다. 병주는 아무 증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했는데 며칠 있다 미각을 잃어 모든 음식이 싱겁다 하더니 일주일 뒤에 되찾았다고 한다. 코로나전쟁을 치룬 병주네가 무사한 것도 3차접종하고 다은이가 수월하게 넘어간 것도 모두 주님의 은혜임에 감사드릴 뿐이다.

방송에도 나오지만 3차까지 예방접종 한 사람은 심하지가 않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중환자와 사망자도 예방주사 맞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통계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조심해야하지만 그렇다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씩씩하게 사람 속을 잘 피해 다니는 사람이 안 걸릴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리교회 가족들은 거의 3차를 맞으신 줄 알고 안심이 된다. 걸리더라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코로나 걸리는 것이 일상인데 걸려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죄인처럼 생각하지 말자. 최대한 조심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자는 말이다. 정부에서는 아주 풀어 논 상태인 것 같은데 우리 모두 이 위기를 잘 이기고 승리합시다. 장황하게 쓴 이유는 코로나 걸려 입원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아시면 덜 불안하실 것 같아서이다. 장로님이 성도들이 불편해 할지도 모르니 이번 주 지나고 월요일부터 새벽기도 나가자고 한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전화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건강 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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