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한 정황이 없습니다. 거지가 의롭게 산 정황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나 거지 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전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는 지옥(하데스)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는 결과를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비유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16장은 바리새파 사람을 향한 비유입니다. 15:2에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을 들으려 할 때 바리새판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비난합니다. 그 비난에 대해 ‘찾았을 때 기뻐하는 비유’, ‘부자와 청지기 비유’ 그리고 오늘 말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17:1-4에서 “작은 자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차라리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일련의 흐름에서 이 비유는 자신들의 종교적 고정관념과 아집에 사로잡혀 죄인들을 배척한 이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부자의 특징 묘사는 무엇입니까?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갑니다(19). 거지의 특징 묘사는 무엇입니까?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고,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고, 개들이 그 거지의 헌데를 핥았습니다(20-21). 보통 비유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여기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나사로? 요한복음 11장,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나사로, ‘하나님이 돕는 이’라는 뜻의 ‘엘라자르’의 줄임말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하데스로 갔습니다. 하데스는 보통 ‘죽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번역합니다. 부자가 하데스에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나사로가 자기 집 대문에 쓰러져 있던 거지라는 사실을 알았을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전에 나사로에게 아무런 자비를 베풀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겠죠. 그것이 왜 잘못인지도 모르겠지요. 그의 머리에는 자기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겠지요. 그는 나사로를 시켜 물 한 방울만 보내달라(24)고 호소합니다. 손가락 끝에 찍어주는 물로 그 고통을 면할 수 없는데도 그는 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떨어진겁니다.
25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소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부자의 잘못이 세상에서 즐겁게 산 것이고, 나사로가 잘 한 것이 고통스럽게 산 것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과연 그런 뜻일까요? 사실, 아브라함도 부자로 살았잖아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았다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건강하게 살았다는 것이 하데스에 떨어질 결정적 이유는 아닙니다.
본문의 부자는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보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더 이상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점점 더 자신의 인생에만 집착합니다. 그의 눈에는 나사로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사로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사로를 귀찮다고 쫓아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돌봐주지도 않았습니다. 마음과 인격이 비뚤어져서가 아니라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자기 단절은 자기 몰입, 자기 집중, 자기 연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