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마태복음 11:2-11

설교본문: 마태복음 11:2-11
설교제목: “당신은 메시아입니까?”

마태복음 12장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10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설교요약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한3:30)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단순히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세례요한 조차 한때 자신의 믿음이 흔들렸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례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를 때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했던 사람이 세례요한 아닙니까? 그런 세례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의심합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순간적으로 흔들린 적이 있으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26:39)

세례요한은 지금 헤롯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헤롯이 본처를 쫓아내고 동생의 아내를 빼앗았을 때 아무도 문제 삼지 못했지만 세례요한 홀로 헤롯을 비난하다 투옥되었습니다(참고 누가3:19-20). 요한은 처음부터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마태3:2)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곧 하나님께서 오셔서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의로 통치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마태3:12)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도식으로 보면 헤롯은 왕좌에서 쫓겨나고 자신은 감옥에서 풀려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감옥 밖에서 제자들이 전해주는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소문 중에는 헤롯의 심판과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심판보다 용서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 그가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알렸지만 지금 예수님은 옥중에서 고난 받는 그를 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한은 기로에 놓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생각이 옳다면 예수님이 아닌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합니다. 깊은 고민 끝에 세례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오실 그분(메시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3)

예수님은 이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말씀하지 않으시고,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 기적과 관련된 말씀을 하십니다(5). 그러나 여기에도 요한이 기대했던 ‘심판’의 메시지가 없습니다. 지금은 용서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때와 심판의 때는 사람이 임의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로 인해 요한이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만약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라서 믿음의 기초가 흔들린다면, 내 생각을 바꿀 것인가? 하나님의 생각을 바꿀 것인가?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야겠지요.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의 틀을 견고하게 구축해 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거기에 맞추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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