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로마서 4:1-5,13-17

설교본문: 로마서 4:1-5,13-17
설교제목: “믿음이란?”

로마서 4장
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설교요약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며 중요한 인물로 여길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 로마서에서 발견합니다. 바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적 정체성을 제시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당시의 초기 기독교는 유-기독교와 투쟁 중이었습니다. 유대-기독교는 유대교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에 반해 바울은 율법과 할례가 없는 기독교 신앙을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초기 기독교 안에 여전히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격하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데 아브라함은 가장 적절한 예였습니다.

 바울은 창세기 15:6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의롭다고 여기셨다”(3).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1)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의로움’이란 ‘구원’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의로움은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가 참된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2)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받은 이유가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4:1-5에서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공로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인정받을 공로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그의 믿음입니다. 창세기 15:6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큰 상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자신에게는 가문을 이을 자식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합니다. 아브라함의 하소연을 들으신 하나님이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시며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 식으로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은 결국 자손이 많아질 것에 대해 확신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브라함이 많은 후손을 주신다는 말씀을 기뻐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식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아니냐구요? 엄밀하게 보면 다르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훗날 얻은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만약 자식을 믿었다면 그런 명령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지요.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었고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상황과 연결시켜 얘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율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신앙과 삶의 토대를 새롭게 설정하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이 이루는 공로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존재론적 관계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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