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창세기37:12-28(37:1-36)

설교본문: 창세기 37:12-28(37:1-36)
설교제목: “하나님의 섭리와 요셉의 침묵”

창세기 37장
12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려고, 세겜 근처로 갔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요셉이 대답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그의 아버지는 헤브론 골짜기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하였다.
15 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가 요셉에게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
16 요셉이 대답하였다. “형들을 찾습니다. 우리 형들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는지, 나에게 일러 주시겠습니까?”
17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너의 형들은 여기에서 떠났다. ‘도단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 가서, 도단 근처에서 형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25 그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마침 이스마엘 상인 한 떼가 길르앗으로부터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낙타에다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27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28 그래서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에,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다. 그들은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설교요약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았습니다. 죽이지 않고 팔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형제를 팔 수 있습니까? 성경 범위 안에서 찾아본다면 그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3), 요셉의 고자질(2), 요셉의 꿈이야기(5-11) 등 이겠지요. 성경은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팔기 전부터 미워하고(4), 더욱더 미워했다(5,8)고 말합니다.

  성경은 요셉 형제의 요셉 인신매매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처음에는 요셉의 운명을 거세시키려 합니다. 자기들이 요셉을 죽이면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는 무서운 결기를 보입니다(20). 그런데 르우벤이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합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유다도 ‘요셉을 죽이지 말고 팔자’고 합니다(26-27a). 아이러니하게도 유다는 이 대목에서 요셉을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혈육)이 아닌가’(27b)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은 20냥에 팔려가고(28), 결국 이집트의 파라오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갑니다(36).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하게 됩니다. 요셉 형제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대상에게 팔지 않았다면? 그 순간 르우벤이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마침 그때 미디안 상인들이 그 지역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출애굽이라는 사건도 없었겠지요? 성경은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에서 ‘그 너머에, 그 깊이에, 그것의 바탕에 놓인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신비롭고 전능한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운명, 섭리 이런 단어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것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고 살아갑니다. 때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기에는 모순되는 악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이러한 역사관을 믿고 사는 사람은, 1) 우리 스스로 역사를 좌지우지 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2) 우리 자신의 삶과 역사를 크게 긍정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절망적인 것 같지만 거기서 인류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큰 긍정을 희망하며 살게 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쭉 읽으며 드는 의문은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요셉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둘러싼 형제들의 고함과 격론이 분분하고(22-27), 아버지 앞에서 장황하게 거짓말을 합니다(31-32). 아들에게 속은 야곱도 말이 많습니다(33-34). 자기 신세를 한탄합니다(35). 자기 연민에 휩싸인 사람도 말이 많습니다. 요셉만 말이 없습니다. 요셉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요? 요셉이 침묵하는 대목에서 ‘행위’로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요셉을 통해 실현되는가를 말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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