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냥 #생존자입니다.’
이 문장은 지난 겨울 유명했던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사진)에 나오는 대사 중 한 구절이다. 드라마 전반에 정신병동 간호사였던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있으며, 웹툰을 거쳐 드라마로 제작되었기에 현실 고증이 매우 잘 되어있다. 여기에 훌륭한 연출이 더해져 ‘정신병동’과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겠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을 만큼 치열하게 ‘나’를 채찍질하며 사는 사람들과,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그저 있어야 하는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내’가 텅 비어버린 사람들을 보여준다. 물론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나’를 살게 하는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빠트리지 않았다.
드라마는 매회 이 모든 ‘나’들이 모여 만들어진 인생 속 희로애락을 동시에 보여준다.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웃으면서 아파하고, 아프면서 웃기도 한다. 병원 밖에서 우리네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살아있음을 멈춘 사람들
2022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암 228명, 심장질환 92명, 코로나 85명, 폐렴 73명, 뇌질환 70명, 자살 35.3명, 교통사고 8.2명 등으로 나타났다. 오늘 하루도 1,022명이 살아있음을 멈추었다는 지표이다.
이 중 주목하고 싶은 요인은 자살과 교통사고이다. 이 두 요인은 충분히 줄이고 없앨 수 있으며, 없애야 한다. 특히 자살로 교통사고보다 4배가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살아있음을 멈추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충분히 충격이어야 한다. 애써 찾아낸 이유가 병리학(우울, 조현 등)에 근거한다고 해서 “손 댈 수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하루 35명, 1년 12,900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크다. 1년이면 서울시 중구 전체 인구(121,000명 2022년 11월 기준)보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살아있음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스스로 포기하는지 알게 되면 다음 질문은 “왜?”이다. 도대체 왜? 어떤 상황에 처하면 ‘살아있음’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지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2021년에 경찰청에서 실시한 통계결과에서 따르면 자살의 요인으로 [정신과 질병 > 경제생활 > 육제적 질병 > 가정문제 > 직장업무스트레스 > 이성문제 > 기타] 순으로 나타나 우리의 추측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일 큰 요인으로 거론된 정신과 질병 요인은 약물 또는 입원 등이 필요한 심한 우울증부터 그 이상의 질병으로 의료적인 개입이 유일한 해결안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하위 요인으로 나온 ‘경제생활’부터 ‘이성문제’라는 요인들이 1차로 발생했을 때, 사회시스템으로 충분히 감당되지 않았기에 ‘정신과 질병’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사건들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달렸다
그렇다면 개인 각자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아이가 태어날 때 엄마는 목숨을 건 고통을 통과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갓 태어난 아이로 인해 곧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된다.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며 겪는 많은 일들은 부모를 부모 되게 한다. 아픈 아이를 업고 응급실에 갔다 오면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사춘기를 겪으며 방문을 잠그는 아이에게 상처를 받고 그 아이가 나와서 밥 먹는 모습에 또 웃게 되는 게 인생이다.
이렇듯 인생은 그런 것이다. 매번 해답을 낼 수 없고, 과정을 정리할 수 없으며, 시시비비를 따질 수도 없다. 그저 희로애락 중에 하나가 내 인생에 왔고 통과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나갈 때까지 놔두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자살예방상담전화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