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욥기 2:1-10

설교본문: 욥기 2:1-10
설교제목: “욥의 운명, 욥의 믿음”

욥기 2장
1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섰다.
2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서, 공연히 그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
4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5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6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너에게 맡겨 보겠다. 그러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7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8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
9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0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설교 요약
욥 이야기에서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기는 대사를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욥의 아내입니다. “이래도 당신은 자기의 신실함(온전함)을 지킬거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욕)하고 죽어라”(9). 이 내용 하나로 욥의 아내는 역사적으로 악녀 중의 악녀, 사탄의 도구로 평가됩니다. 이 멘트 이후, 욥의 아내는 욥을 비난하고 떠났는지, 죽었는지, 여전히 욥의 옆에 있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욥의 아내는 왜 그랬을까요? 하긴,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서로 비난하는 부부도 있지요. 더군다나 자식들까지 잃었으니 욥의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욥 당신이 뭔가 잘못했으니 이런 재난을 당한 것 아니냐?”고 따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두 번째 재앙이 닥칩니다. 욥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로 뒤덮였고(7). 잿더미에서 자기 몸을 긁고 있습니다(8). 이런 장면을 본 욥의 아내가 한마디 한 겁니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욥의 아내가 한 발언은 두 내용입니다. 1) 여전히 자기의 신실함(온전함)을 지킨다. 2)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욥의 아내도 유대인일 텐데, 어떻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할 수 있을까요? 욥의 아내의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욥이 결국 자신의 재난의 운명을 감당하지 못하다가 하나님을 욕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다 죽을 것이다. 또 하나는 욥의 아내가 볼 때 욥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유대 정통신앙에서 볼 때 ‘자신이 신실(온전)한데 이런 비참한 운명에 떨어졌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유대 정통신앙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식도, 재산도 남편의 건강도 잃은 마당에 신앙만은 건지고 싶다는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했다고 보는 겁니다. 후에 욥과 세 친구의 논쟁에서 강조하는 것도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사람치고 자기의 온전함을 주장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욥이 뻔뻔할 정도로 자신의 온전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당하는 재난의 책임을 죄로 돌리는 유대교 전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욥이 대답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겠는가”(10a, 참고1:21) 라고 말해,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10b)고 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당한다? 이게 대재앙을 겪는 욥의 믿음입니다. 욥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화의 개념을 넘어섭니다. 복 받으면 행복하고 화를 당하면 불행하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욥은 그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복과 화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욥의 비탄 가운데서도 섬광 같은 구원의 빛이 느껴지는 것은 ‘이 모든 일에’ 말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재난의 깊이 속에서 구원이 깊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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