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욥기 38:1-7(34-41)

설교본문: 욥기 38:1-7(34-41)
설교제목: “고난의 문제”

욥기 38장
1 그 때에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2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3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5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6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7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설교 요약
욥기는 3장부터 41장까지 ‘인간이 당하는 이유 없는 재앙’에 대해 길고 긴 논쟁입니다. 욥의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이 당한 재앙의 이유는 죄이니 죄를 회개하라고 다그칩니다. 나중에 등장하는 젊은 학자 엘리후는 욥의 재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불행은 죄와 관계없다고 합니다.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강조합니다.

욥은 이 논쟁 중에 절망감에 빠집니다. 이 논쟁이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 사실입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순입니다.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면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하고,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확신하면 하나님을 부정해야 합니다.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욥은 하나님을 향해 ‘당신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말하기도 하고, 이럴 바에야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온갖 설득과 호소와 비난에도 기세등등하다가 하나님께서 나타나 하시는 말씀(38-41장) 앞에서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욥기42:6에서 “내가 스스로 거둘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죄한 이들에게 왜 재앙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욥이 불신과 불만과 불가지론(不可知論)과 자기 의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 확신하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답은 욥이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실질적으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첫 마디가 오늘 본문인 욥기 38:4입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세상의 모든 시작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욥은 결국 자신의 고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합니다. 비록 원하는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더 이상 고난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난의 문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욥기는 정작 고난의 문제에 대해 해답은 주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질문만 안겨준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고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욥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누군가의 고난이 반드시 죄에 대한 징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고하게 고난 당하는 이웃에게 이런 인과응보의 교리를 씌워 정죄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둘째, 고난의 문제에 대해 성경이 100% 완벽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을 나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나의 고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런 신앙 속에는 우리의 미래가 결코 우리의 고난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시편31:15). 그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로마서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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