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설교본문: 로마서 10:8-13
로마서 10장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⑥“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 ⑥신 30:14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11 성경은 ⑦“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 ⑦사 28:16(칠십인역)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13 ⑧“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설교요약
바울은 구원 얻는 문제를 율법과 믿음을 대비시켜 말합니다. 얼핏 보면 바울이 신약의 믿음만 강조하고 구약의 율법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유대교의 배경에서 자라셨고 초대교회도 유대교를 벗어나지 않고 성장했습니다. 바울도 철저히 유대교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심지어 오늘 말씀에서 율법에 대한 이해도 정확하게 피력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근본 의미를 로마서10:5(레위기18:5 인용)에서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율법을 행하면 의를 얻는다)” 쉽게 생각하면 율법을 잘 지키면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가 됩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10:6에서 ‘믿음에 근거한 의’를 말하는데 이 말씀을 신명기30:14 말씀을 인용해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과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율법을 입에 달고 살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유대교 전통을 인정하여 로마서 10:9에서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유대교와 기독교의 선을 긋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율법 신앙은 결국 ‘사람의 의’에 머물더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고상한 가치가 있고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자기 의’를 세우려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3).
또 유대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입과 마음에 담고 있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바울은 로마서 10:9을 통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구원의 길이며 하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자기 의는 하나님의 대한 지식의 결핍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4)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의에 매이지 않습니다.
자기 의와 하나님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0:11과 13절 말씀을 구약에서 인용하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이사야28:16/1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요엘2:32/23). ‘누구든지’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2절에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알았습니다. 율법은 차별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차별이 없는데 율법은 차별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차별없이 사람을 보시는 원래의 하나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누구든지’의 신앙입니다. 물론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기 위해 우리의 선교적 책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