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사도행전 5:27-32

설교제목: “죽임과 살림”
설교본문: 사도행전 5:27-32

사도행전 5장
27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공의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소.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소.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설교요약

오늘 말씀의 배경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5:12-26) 재판 받는 자리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사도들을 체포한 이유는 사도들의 복음 증거에 대한 시기심(17)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다(28a)’, 그 소문이 퍼질수록 ‘예수님의 사형 처형은 그들이 저질렀다’는 말이 퍼지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28b).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처형 책임이 유대교 지도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을 명예훼손이나 유언비어 유포로 다루며 이런 내용 전파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겁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심문에,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대답하는데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다(29) 2)당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했다(30) 3)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고 높이셨다(30-31) 4)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32). 이런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으나(33) 가말리엘의 중재로 채찍형에 처한 후 풀려났습니다(34-40). 사도들은 이 일로 기죽지 않고 예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했다(41)고 합니다. 32절에서도 사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수 사건에 대한 ‘증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증인은 법적용어입니다. 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인데 증인이라는 뜻과 동시에 ‘순교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증인이라고 고백할 때 순교를 각오할 정도로 신앙을 자신의 운명과 일치시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를 교양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런 말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증인의 정체성 갖지 못한 사람은 증인의 기쁨 또한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당당히 자신들을 증인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깊이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30)는 사실을 짚었습니다.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31절에서 부활의 실제적인 의미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는 부활을 뜻하고,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능력은 근본적으로 ‘회개’와 ‘죄사함’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회개와 사죄의 근본적인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도덕, 윤리적인 면으로 봅니다만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 즉, 자기 중심성을 죄라고 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마음,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죄의 지배에 아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자기 중심의 존재가 어떻게 자기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렇게 여기는 것, 칭의(稱義)로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 우리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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