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요한복음 13:31-35

설교제목: “서로 사랑하여라”
설교본문: 요한복음 13:31-35

요한복음 13장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32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33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설교요약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구절로 고린도전서13:13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요한일서4:16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마태5:44)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4,35절에서도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내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주님의 말씀이니 마땅히 받아들이면서도 실제 적용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성도간에도 형식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조차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서로 사랑하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실까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어떤 상황에서 하셨는지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 부분 요한복음 13:21 이하에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뒤 요한복음 13:36-38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가룟유다와 베드로를 거명하셨지만 실제 열두제자 모두 관련되는 일이지요. 더 나아가서는 요한복음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이 배신과 부인의 신앙적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일반적인 교훈이 아니라 공동체 해체의 위기 가운데서 나온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인가요? 레위기19:18에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이라고 하시는 것은 일반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예수님이라는 인격, 삶, 운명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착하고 양심적으로 도덕적인 삶이 되는데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일치해야 한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기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앞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3:1-20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특히 14-15절에서 ‘선생된 내가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고대 유럽에서 노예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본을 보이셨다는 것은 성도들끼리 서로 노예처럼 철저하게 섬기는 관계로 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랑의 핵심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입니다. 예수님께서 발씻기는 사건 보다 중요한 사랑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요한3:16)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참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비록 부분적이나마 실제의 삶에서 노예의 영성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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