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환상을 보는 사람들”
설교본문: 사도행전 16:6-15
사도행전 16장
설교요약
인생 변곡점(變曲點)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데 ‘성령이 막으시고’(6),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7)고 합니다. 뭔가 어려운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 추론이 가능합니다만 유대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 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쪽 모두 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만 유대 기독교는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고 이방 기독교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런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자 일종의 힘겨루기 양상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유대 기독교가 대표자들을 보내 바울의 복음이 충분하지 않다고 훼방을 놓았습니다. 바울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심지어는 바울은 사도권이 없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일반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한 방법은 목표를 위해 계속 싸우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먼저 복음을 뿌린 지역이니 기득권도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적당하게 타협하는 길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학적 소신을 조금만 굽히면 말씀 전할 수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머물러서 이전투구식으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신학적으로 옳은 것이 분명하지만 더이상 다투지 않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유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는 소아시아(터키지역)을 포기하고 이제 바다 건너 마케도니아지역으로 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사도행전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환상 이야기로 전합니다.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9)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일행)이 갈라디아와 소아시아를 포함한 지중해 동편 지역을 포기하고 이제 바다 건너 선교지역을 바꾼다? 바울이 자기 인생을 쏟아부으면서 순전한 복음으로 세운 교회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일까요? 바울이 떠나기를 원치 않는 남겨진 사람들은 바울에 대해 배신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일까요?
10절에 보면 곧바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을 확신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첫 성이고, 로마의 직할 식민지입니다. 빌립보에서 첫 여성 세례 신자 루디아가 배출됩니다(14-15). 그녀는 바울 일행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 재정 후원자가 되어 빌립보지역 전도에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의 첫 교회이고, 빌립보 교회의 설립으로 인해 이제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은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복음 전도의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선교지역을 마케도니아로 변경하게 된 계기는 ‘환상’입니다. 환상은 ‘신적 경험’(모세가 호렙산 가시나무 떨기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 같은, 행7:31), 거룩한 체험입니다.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은 신적인 빛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지만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용감하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환상을 본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