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
설교본문: 열왕기상 18:20-39
열왕기상 18장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아합왕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기원전 9세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은 국제 무역에 힘입어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정치적으로는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신앙적으로는 최악(참고 왕상16:30)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배격하고 바알 예언자들을 감싸고 돌았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예언자들이 모조리 쫓겨나든지 죽고, 모든 종교 직책은 바알 예언자들이 차지했습니다.
아합의 친(親)바알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의 처지는 고군분투, 고립무원이었습니다. 아합이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배척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엘리야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살기 편하면 왕을 지지하고 불편하면 지지를 철회할뿐이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별로 깊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과 달리 아합 정치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도 초창기는 아합을 피해 다녔습니다. 3년 동안 피해 다니던 엘리야는 급기야 정면 승부를 하기로 작정하고 아합에게 여호와가 참된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된 하나님인지 겨루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시합의 방식은 간단합니다. 바알의 제단에 오른 소가 불에 타는지, 여호와의 제단에 오른 소가 타는지 겨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바알 제단에 모인 450명 예언자들이 심지어 자해를 하면서까지 기도를 올렸으나 하늘로부터 아무런 기척도 었었습니다. 여호와의 제단에서 기도를 올리는 예언자는 엘리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를 올리자 “주님(여호와)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웠고 도랑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말려 버렸다”(38)고 합니다. 승부는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39) 외쳤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 메시지는 엘리야의 기도에도 나와 있고(36,37), 백성들의 부르짖음에도 나와있듯이(39)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 입니다. 너무 뻔한 대답 아닌가? 마땅히 그러한 것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바알신앙의 본질과 여호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바알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풍요의 신입니다. 그 신은 농경신입니다. 그들은 바알이 필요한 자연환경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알을 잘 섬겨야 풍년을 약속받을 수 있고 자손들이 번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만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엘리야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여호와 신앙은 그런 물질적인 풍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목표로 했습니다. 말씀은 곧 약속입니다. 물론 이 약속에는 물질적인 내용도 포함됩니다만 이 물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것이지 신앙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물질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왕권을 확립하려는 왕에게,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존하라고 외치는 자가 예언자입니다. 세상은 왕과 예언자, 바알신앙과 여호와 신앙, 두 세력의 대결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도 그렇지 않은가요? 자본이 중심되어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오늘의 바알 아닌가요? 어떻게 보아도, 어느 편을 보아도 물질적 풍요만을 목표로 하는 세상. 그러나 엘리야의 제물을 불사른 여호와의 불(38)을 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삶의 근거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야의 제단을 불사른 여호와의 불을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