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구역예배를 시작하는 이번주,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연약한 내 믿음을 어떻게 인도하셨나요?”라는 마지막 적용 질문 앞에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아무것도 의지 할 곳이 없었을 때, 불확실한 미래가 확실할 때 찾아오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깨닫고 은혜가 되었다. 

[떠남]

열일곱, 친구의 전도로 불같은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과의 단절을 경험했다. 한 집안에서 두 종교가 있으면 큰일이 난다고 믿었던 엄마는 내가 어쩌다 한 번 교회를 갔다 오면 나를 혼냈고, 파랗고 조그만 성경책을 버리기 일쑤였다. 여섯 일곱살 무렵이었다. 그런 부모님께 “저는 이제 예수님을 믿기로 했고, 교회에 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으니 어쩔 수 없이 허락은 하시면서도 주일이면 교회 가는 날 원수 보듯 하시거나 아예 투명 인간처럼 대하셨다. 나는 그때 ‘이제 난 혼자구나’라고 느꼈지만 교회 가는 일, 아니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주일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위해 처음으로 부모, 형제를 떠나는 외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졸업을 하고 이 년 후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몇 해를 더 서울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대형교회가 있어서 그 곳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처음엔 말씀에 은혜도 받고, 예배도 잘 드리고 구역모임도 가졌다. 그런데 ‘선데이 크리스쳔’이 되어가던 난 점점 영혼이 빈곤해졌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한없이 믿음이 약해지고 작아진 나는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 직장과 서울이라는 큰 메리트를 버리기로 선택했다. 남편은 일 년 정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나 역시 처음 공부방이라는 나만의 일터를 마련하면서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안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다시 한번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평생 ‘우리 교회’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회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옳다고 여기는 믿음 때문에 사랑으로 섬겨야 할 사람들을 정죄하고, 응답 되지 않는 기도는 간절함의 부족 혹은 더 기도하지 않는 불성실함 때문이라는 말씀에 근거한 설교는 나를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했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임신이 되지 않고 있던 나에게 주실 때까지 매일 새벽기도를 나오라는 권유는 너무 무서웠다. 혹여나 내가 그렇게 기도해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임신이 되면 나보다 더 오래 기도하고 수년간 새벽기도를 나오며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구역장님은? 반대로 내가 끝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그때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나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 주셔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보다 더 기도하시면서 하신 선의의 뜻이란 것을 알았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 보다 ‘하나님’을 알고 싶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 걸까?”

아브람은 롯과 떨어져 살기로 선택하면서 스스로 손해 보는 자리, 외로운 자리, 허전하고 약해지는 자리에 있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 아브람에게 찾아오시고 약속하셨다. “네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고 너의 자손을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약함을 아셨다. 그리고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나는 부모님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하면서 불효자, 서울을 떠나면서 어리석은 자, 교회를 떠나면서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처럼 되었지만 아브람을 찾아오셨던 하나님은 내게도 때마다 찾아오셨다. 하나님을 믿으며 나도 모르게 제일 많이 하게 된 기도를 하나님은 기억하고 응답하고 계셨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함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주세요.’

구역장 교육 말미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양보를 했지만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견뎌야 합니다.” “선한데 가난한 것, 악한데 부유한 것이 뒤엉켜 있어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위해 혹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떠남의 선택을 했기때문에 이전보다는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떠나고 홀로 있었던 자리엔 언제나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내 영을 사로잡아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기에 감사가 넘쳤다. 

나의 가장 약함을 아시고 채우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에 이르게 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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