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필사를 마치며
50년대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낭만은 있었지만 교회는 없었다. 원주로 이사와 친구의 전도로 주일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모든 말씀과 행사는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았다. 교회 생활은 나의 즐거움이었고 신앙의 모토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많은 말씀을 먹고 자란 내가, 나이 들어 이제 교회에서 진행하는 바울서신 필사 행사에 참가하니 꿀 재미있다. 그동안 듣고 읽은 말씀이 새로워 또박또박 썼다. 그런데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데 컴퓨터시대 사람도 아닌데 글씨가 참 삐뚤빼뚤하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나보다. 바울선생님의 서신을 읽으며 복음서나 다른 말씀도 그렇지만 그 곳엔 信. 望. 愛 의 말씀이 집약되어 있음이 환히 들어난다.
80년대엔 학교에서 가훈 만들기를 해서 집에다 걸어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이 한문을 잘 쓰셔서 信. 望. 愛를 써 달랬다. 오리고, 예쁘게 꾸며서 액자에 걸어놓고 자녀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해석해주며 가훈을 익혔던 기억이 새롭다.
성경책에는 다서 여섯 줄을, 공책엔 두 줄 그어놓고 쓰라니 와~ 글씨를 쓰느라 못 쓰는 글씨체가 컸다 작았다 균형이 맞지 않으니 난리 블루스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으니 깨알같이 썼다, 크게 썼다 했다. 필사 공책이 개혁개정판용이라 그렇단다. 성경도 얼른 통일이 되든지 아니면 새번역 성경에서도 필사노트를 만드시든지 했으면 어떨까싶다.
또 조심성이 약한 내가 쓰다 일 좀 보고 다시 쓰기 시작할 때, 3장을 4장으로 착각 써내려가다 아차 싶어 보면 반장 정도 썼으니 에구에구 허탈 그 자체였다.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 화이트로 지우고 다시 쓰는 씁쓸함도 맛보았다.
그래도 자고나도 쓰고 싶고, 어딜 다녀와도 쓰고 싶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손가락마다 퇴행성관절이 일어나고, 안구건조증이 심해 글씨를 쓰다 희끄무레 해져 눈을 비비고, 손목이 새근거려도 행복했다. 내 친구 엄마가 96 세로 올 9월에 천국에 가셨다. 살아생전 성경 필사를 다섯 번 하셨다고 장려식장 진열대에 열람해 놓은 걸 보았다. 기쁘게 마지막을 쓰시고 소천 하셨다 한다. 그 기쁨에 많은 분들이 즐겨 필사하시나 보다. 난 생전 처음 필사 해 보지만 우리교회 식구들이나 내 주변 지인들도 필사하시는 분들이 참 많으시다.
필사를 하며 사도바울의 그 귀한 말씀들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를 묵상하며 적용점을 찾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구자임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