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누가복음 19:1-6

설교본문: 누가복음 19:1-6
설교제목: “삭개오, 그에게로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19장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설교 요약
오늘 초대받아 오신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초대한 이유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을 만난 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그 삭개오가 만난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은 ‘보라’로 시작하며 삭개오를 소개합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이름이 무엇인가? 그 지위가 무엇인가?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가 기준입니다. 삭개오를 그런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런 기준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삭개오는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2)이지만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만족하게 할 수 없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교회에 다닌 후 부자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 꼭 구원받은 증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넉넉했지만, 주님이 주시는 구원을 그때까지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 것이 공허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삭개오는 이런 마음에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3)하여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앞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은 보기 위해서라면 ‘나무 위라도 올라가는 자’에게 성취됩니다(4). 당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까? 구원의 본질은 인격적인 만남에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와 ‘찾아오신 구주’의 만남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핵심을 살펴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귀 기울입시다.

5절에서 예수님이 ‘그 곳에’ 이르러서, ‘그 곳’이 어디일까요? 좋은 이름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의 자리, 높은 지위로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의 목마름이 있는 곳, 하나님 아닌 것으로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삭개오는 어떤 마음으로 나왔나요? ‘예수가 어떤 사람인가'(3)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왜 이 자리에 나왔나요? 삭개오처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러 왔습니다. 주님은 기다리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5). 인격적 만남은 눈과 눈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있는 삭개오의 눈과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주님의 눈이 서로 만나는 순간에 구원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부르십니다(5). 그리고 삭개오는 ‘주님'(8)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한 사람이 구원받았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반응을 합니다. 예수님이 ‘어서 내려오너라'(5) 말씀하시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옵니다'(6).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묵겠다(5)고 하십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셔들입니다(6). 신앙은 주님을 기쁨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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