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갈라디아서 4:4-7

설교본문: 갈라디아서 4:4-7
설교제목: “종에서 자녀로”

갈라디아서 4장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설교 요약
갈라디아서 4:4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는 이야기를 하면서 독특한 표현 두 가지를 씁니다. 하나는 ‘여자에게서’ 또 하나는 ‘율법 아래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권위로 이 땅에 오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안고 오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5절 말씀에서,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말을 풀어보면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유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3:10에서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율법의 아래 즉,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을 저주로 보고, 또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는 한계를 말한 것입니다. 율법이 왜 저주일까? 갈라디아서 4:3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초등학문)에 종노릇 하였다’는 말을 합니다. 헬라 철학, 점성술, 유대 율법 등 시대 정신에 매여 살아 자유를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는 것을 바울은 ‘자녀의 자격(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5)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자신이 아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하시는 분 계시죠? 본문 6절은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의 영’을 받지 않으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영은 보이지 않기에 오감으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그들에게 보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적으로 세워집니다.

이런 변화를 7절에서 ‘종이 아니요 자녀(아들)이다’, ‘자녀(아들)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유업을 받을 자)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종으로부터 아들로 존재가 변화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와 전적인 신뢰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뜻이다. 종의 특징은 두려움이지만 자녀의 특징은 자유와 평화와 만족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들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율법으로, 무력하고 천박하고 유치한 교훈(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시 종노릇 하려고 합니다(4:9).

사실 겉으로는 종이나 자녀가 삶의 과정이 다 같습니다. 힘든 일이나, 치사한 일도 동일하게 감당해내야 합니다. 다만 자녀는 똑같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자유인으로 삽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영혼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매이지 않습니다. 내가 아끼던 것을 잃어도 다른 아낄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우리 운명이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그보다 더하겠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며 완성하실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시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견디기 힘들지라도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한 줄 믿습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