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요한복음 10:11-18

설교본문: 요한복음 10:11-18
설교제목: “선한 목자 예수님”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18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설교요약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11,14)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한 경우가 많은데(시편23편) 예수님도 그 맥락과 같이 ‘선한 목자’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를 ‘양’이라고 인정하고 사느냐입니다. 목자와 양이라는 표현은 목자를 향한 양의 전적인 신뢰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인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1) 목숨을 버리는 목자(11)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이 늑대나 이리의 공격을 받을 때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목자 중에는 삯꾼도 있습니다. 그는 고용된 사람입니다. 그의 관심은 양이 아니라 돈입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양을 돌보기에 양이 위험에 빠졌을 때 자기 목숨을 걸고 양을 구해내지는 않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하나님과 일치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 사랑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2) 양을 아는 목자(14,15) 양을 안다고 할 때 ‘안다'(기노스코)는 단어는 상대방을 아주 깊이 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자기 정체를 잘 모르지만,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누군지, 즉 우리가 바로 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이 목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려면 목자가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것도 두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처럼 가깝게 느끼는 차원입니다. 이 두 차원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예수님 자체에 알려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신앙생활이 습관이 되면 신앙의 공백 상태에 떨어집니다. 양이 목자를 안다는 말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아들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깊이 경험합니다.

3) 선한 목자 / 선하다는 말은 ‘착하다’는 말보다 훨씬 깊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다'(창세기1:12,19,21,25,31)고 하신 말씀과 통합니다. 우리는 좋다거나 선하다는 말을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유익하다고 하는 판단은 옳습니까? 우리의 인식능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우리의 인식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라는 말은 그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10).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양들에게 생명을 넘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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