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요한복음 15:1-8

설교본문: 요한복음 15:1-8
설교제목: “나는 참 포도나무다”

요한복음 15장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설교요약
구약성경에도 포도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이사야5:1-7, 예레미야2:21, 에스겔19:10-14, 호세아10:1). 하나님이 포도원 주인이시라는 점에서는 예수님의 비유와 일치합니다. 다만 구약에서는 포도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인데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그의 백성(제자)은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들포도를 맺는 것’이 문제인데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는 은유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의미를 담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나무와 가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고, 서로가 속해 있고, 서로 연결됨으로 한 생명을 공유합니다. 나무와 가지 사이의 존재와 역할에 있어서 차이나 위계질서도 강조하지 않습니다. 연결만 강조합니다. 이는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지닌 특성입니다. 인종, 성별,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고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용하고 주인과 종의 관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자녀로 서로를 인식하고 형제자매로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교회의 모습을 뜻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머물러 있다'(거하다/메노)가 강조됩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만 11번 등장합니다. 2절의 ‘붙어 있다’ 보다 의미가 강합니다. 겉모양으로 연결된 정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임으로 함께 하게 된 관계를 뜻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받아들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1). 참포도나무는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열매를 내는 것이 포도나무의 일입니다. 모든 열매는 가지에 열립니다. 가지에 열리되 가지의 열매가 아니라 나무의 열매입니다. 가지인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 포도나무의 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가 있습니다(2). 외견상으로는 붙어 있으면서도 포도나무(그리스도)에 머물지 않은 가지(4,5)입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는 포도입니다. 포도 열매를 얻기 위해 주인(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나무가 맺을 열매는 주인이 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열매가 무엇을 뜻하는지 적시하지 않지만, 이 본문을 둘러싼 큰 맥락(13-17장)을 보면 그 열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14장)이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13장)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붙어만 있고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2a)도 있습니다. 농부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서 제거(손질)합니다(2b). 농부의 작업은 모든 가지에 칼질하는 일입니다. 열매를 내지 않는 가지는 잘라서 내버리고, 열매 맺는 가지는 잘라서 다듬어 줍니다. 둘 다 자르는 일이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전자는 버림당하는 심판, 후자는 깨끗하게 손질되는 보존의 상황입니다. 그 칼은 ‘내(예수)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3)입니다. 말씀이 칼이라는 말입니다. 오래된 가지일수록 칼(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말씀(칼)이 우리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