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사무엘하 11:1-15(1-27)

설교본문: 사무엘하 11:1-15(1-27)
설교제목: “그 일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

사무엘하 11장
1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6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내니,
7 우리야가 다윗에게로 왔다.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0 다윗은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원정 길에서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는지를, 우리야에게 물었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야는 그 날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그 다음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설교 요약
사무엘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윗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다윗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11장부터 20장까지는 다윗이 몰락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이 11장이기에 다윗이 정점에서 몰락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다윗의 몰락이 시작될 무렵,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11:1에서 ‘그 다음해 봄이 되어 왕들이 출전하는 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암몬과 전쟁 중이었는데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압을 비롯한 유능한 지휘관들이 다수 있어서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를 영원무궁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언약)도 받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제 더 이룰 것이 없습니다. 암몬과 전투 중이지만 암몬은 이스라엘과 상대가 되지 않기에 다윗이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압이 전투에서 이기면 다윗은 암몬의 랍바에 가서 승리의 퍼레이드를 벌인 후 전리품이나 취해 오면 됩니다.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사도바울의 말씀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바로 그 시간에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씻을 수 없는 커다란 과오를 저지릅니다. 전쟁터에 나간 자신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합니다(4). 우리아는 다윗의 망명생활 초기부터 고락을 함께한 충성스런 다윗의 심복이었습니다(23:24,39).

다윗은 간음 중에서도 질이 나쁜 ‘권력에 의한 성 착취’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았습니다. 심복의 아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3). 그 지점에서 부당한 호기심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율법은 간음한 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합니다(레위기20:10, 신명기22:22). 하지만 누가 왕을 사형에 처하겠습니까? 절대권력이 어느새 다윗을 부패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이 정신 차리고 그의 실수를 마무리하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음죄와 살인죄는 속성상 진실을 말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죄를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간음과 살인죄는 처음부터 짓지 않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다윗은 완전범죄를 꿈꿉니다. 우리아가 휴가를 받아 밧세바와 동침하면 임신한 아기는 우리아의 아기라 우길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충직한 우리아는 너무 경건했고 너무 충성스러워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11).

다윗은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우리아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새로운 죄, 더 큰 죄를 짓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우리아를 더 맹렬한 전투에 내보내 죽게하라고 지시합니다. 요압은 명령에 따르고 우리아는 전사합니다. 부패한 권력의 모습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2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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