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누가복음 3:7-17
설교제목: “성령과 불”
누가복음 3장
7 요한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10 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설교 요약
세례요한의 설교는 과격합니다. 형식적으로 세례받아봐야 아무 의미 없다고 합니다(7). 9절까지 내용에서 세례요한은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1) 삶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어라 2) 혈통 안일주의에 떨어지지 마라 3) 심판의 긴박성을 알라. 요한은 말로만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인으로 검소하게 거칠게 살았습니다. 심지어 헤롯왕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실제의 삶이 담보되었기에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설교에서 한편으로는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무리들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10) 묻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11-14절까지의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기 분수를 잘 지키면서 정의롭게 살라’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정의는 요즘 감각으로 말하면 공정입니다. 공정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모두 ‘자신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점에서만 생각합니다.
세례요한의 청빈하고 정의로운 삶과 열정적인 설교를 접한 당시 민중들은 그가 혹시 그리스도인가 생각합니다(15). 요한은 분명히 ‘아니라’고 합니다(16-17, 참고,요한1:20). 자신보다 능력이 많은 신이 올 것이고,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었다면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말하는 능력이 많으신 분은 추수 때 알곡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그에 의해 개인의 운명과 세상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를 세례라는 종교의식으로 설명합니다. 물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런 도덕적이고 개혁적인 변화가 우리의 근본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인간으로서는 최선이지만 구원의 길 자체는 아닙니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고 말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도덕적 변화라면 성령과 불로 베푼 예수님의 세례는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물은 겉모양을 씻어주고, 불은 우리를 태웁니다. 성령의 불은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질적으로 바꿉니다.
요한의 세례가 인간에게 초점이 있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하나님께 초점이 있습니다. 요한은 인간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외쳤다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선포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회개의 열매를 삶으로 맺으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죄인과 세리와 군인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라고 하십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실제로 변하게 하는 궁극적인 능력이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요한이 말하는 회개의 열매도 맺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라워서 그 영혼이 이미 배부릅니다.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아도 충만합니다.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에 손해를 봐도 상심하지 않습니다.누가복음은 초반부에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밀접하게 연계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