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목사 / 누가복음 3:1-6

설교본문: 누가복음 3:1-6
설교제목: “광야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

누가복음 3장
1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그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고,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리고,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였다.
4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5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6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설교 요약
누가복음은 초반부에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밀접하게 연계시킵니다. 출생 장면, 그리고 공적 활동에 대한 내용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공적 활동에서 전한 핵심 메시지는 똑같이 ‘하나님나라와 회개'(3)입니다. 세례요한이 공적 활동을 시작하는 대목에 그 시대 최고 권력을 누린 인물들을 소개합니다(1-2a).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활동하던 때는 로마제국 시대입니다. 문명의 빛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둠이 지배하는 제국입니다. 제국의 위험 요소를 응징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지는 시대, 이 이름들이 그런 어둠의 역사의 상징성을 보여줍니다.

로마황제, 총독 등의 이름과 대비되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합니다. 세례요한(2)입니다. 세례요한은 정치 권력도 없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이라 제사장이 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종교 권력도 없는 예언자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에게 ‘광야(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2b). 광야, 인간이 만든 모든 작위적 형식이 배제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사람이 만든 명분과 직분과 체면, 업적에 둘려싸여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민중 선동이나 무력 혁명을 꿈꾸지 않습니다. 오직 ‘죄사함과 회개의 세례’만을 선포합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설교합니다(참고, 3:7-14).

세례요한의 역할은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어떤 사람의 역할입니다(3)’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포로된 백성을 하나님이 해방하실 터인데 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집니다(4). 그런데 이런 일이 광야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광야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모두 광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생생하게 경험하는 자리가 광야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광야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시험도 광야에서 받으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자리이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 삶 자체가 광야이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 광야와 관계없이 삽니다. 광야와 대척점에 놓인 황제와 총독과 대제사장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이게 고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광야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혹시 우리가 광야 같은 운명에 떨어진다해도, 아니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모두 그런 운명에 떨어질텐데, 절망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맙시다.

우리의 능력으로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을 낮출 수 없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6)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새로워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새로운 것은 오직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믿는 신앙에 기초를 둔 우리의 신뢰심입니다'(하나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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