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누가복음 21:25-36
설교제목: “늘 깨어 있어라”
누가복음 21장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3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36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설교 요약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1) 25-28절, ‘인자가 오는 때’에 벌어지는 징조, 2) 29-33절, ‘무화과나무의 비유, 3) 34-38절, ‘깨어 있어라’는 권고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자가 오는 때에는 우주 차원의 대혼란이 발생하고 대중은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이 나고 무성해지는 것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우주 차원의 혼란도 그 징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혼란과 대재난이 일어나는 때에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단어를 누가복음 21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날’입니다.
파멸적인 ‘날’은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미 우리가 겪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대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그런 현상과 무관한 듯 사는 이유는 사람들이 개인의 일상에 과몰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살이에서 인정받는 일이 중요하니 그런 일상의 질서가 해체되는 그 ‘날’을 실감하기 어렵고 또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입니다. 묵시적 대재난은 인류 전체 차원만 아니라 개인의 운명에서도 피할 수 없는 엄중한 실존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날’이 되면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겁니다. 실제 우리는 크고 작은 묵시적 대재난을 일상에서 겪고 있습니다.
34절에서, 우리가 정신 팔리는 대상 세 가지가 나옵니다. ‘방탕’은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태도입니다. 루터 성경은 ‘게걸스럽게 먹는다’로 번역합니다. ‘술 취함’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이고, ‘생활의 염려’도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합니다. 마음이 둔하게 되면 그 ‘날’이 갑자기 ‘덫’처럼 닥칩니다. 세상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떨어지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세상의 요구에 매달리다 보니 참된 평화도 안식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묵시적 대재난의 ‘날’이 온다는 것마저도 멀게만 느껴집니다.
36절을 공동번역성경은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인자/人子)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피한다’는 말은 묵시적 대재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거기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길이 ‘인자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인자는 마지막 때 심판의 전권을 행사할 인물로 예수님을 가르킵니다. ‘인자 앞에 선다’는 말은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이 묵시적 대재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늘 깨어 있다’는 말과 ‘기도한다’는 말은 같은 차원에 속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진지하게 묻고 대답을 찾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인간 실존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그걸 안다면 우리는 타인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살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1)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는 데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임을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