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목사 / 예레미야 31:1-14

설교본문: 예레미야 31:1-14
설교제목: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때”

예레미야 3장
1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어떤 남자가 아내를 버릴 때에, 그 여자가 남편에게서 떠나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면, 그 여자가 본남편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느냐? 그렇게 되면, 그 땅이 아주 더러워지지 않느냐?’ 한다. 그런데 너는 수많은 남자들과 음행을 하고서도,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려고 하느냐? 나 주의 말이다.”
2 “두 눈을 뜨고, 저 벌거숭이 언덕들을 바라보아라. 네가 음행을 하여 더럽히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느냐? 사막에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물건을 터는 유목민처럼, 너는 길거리마다 앉아서 남자들을 기다렸다. 너는 이렇게 네 음행과 악행으로 이 땅을 더럽혀 놓았다.
3 그러므로 이른 비가 오지 않고, 늦은 비도 내리지 않는데, 너는 창녀처럼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4 지금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오랜 친구’라고 하면서,
5 ‘하나님은 끝없이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면서, 온갖 악행을 마음껏 저질렀다.”
6 요시야 왕 때에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배신한 이스라엘이 한 일을 보았느냐? 그가 높은 산마다 올라가서 음행을 하였고, 또 푸른 나무가 있는 곳마다 그 밑에서 음행을 하였다.
7 그래도 나는, 그가 이 모든 음행을 한 다음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신실하지 못한 그의 아우 유다까지도 언니의 변절을 보았다.
8 유다는,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고 음행을 하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나에게서 내쫓기는 것과, 이혼장을 쥐고 내쫓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신실하지 못한 아우 유다가 두려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도 가서 음행을 하였다. 그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9 그는 음행하는 것을 가벼운 일로 여겨, 그 땅을 더럽히고, 심지어 돌과 나무를 음란하게 섬겼다.
10 이런 온갖 음행을 하면서도, 배신한 자매 유다는, 건성으로 나에게 돌아온 척만 하고, 진심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11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였다고 하지만, 신실하지 못한 유다보다는 낫다.
12 너는 북쪽으로 가서, 이 모든 말을 선포하여라. 배신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다시는 노한 얼굴로 너를 대하지 않겠다. 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노를 영원히 품지는 않겠다.
13 다만, 너는 너의 죄를 깨달아라. 너는 너의 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푸른 나무마다 찾아 다니며, 그 밑에서 다른 신들에게 너의 몸을 내맡겼으며,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너는 이것을 깨달아라. 나 주의 말이다.”
14 “나를 배신한 자녀들아,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의 보호자다. 내가 성읍마다 한 사람씩, 가문마다 두 사람씩 택하여, 너희를 시온 산으로 데려오겠다.

설교요약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 주의 말이다. 때가 오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1). 여기서 모든 지파의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남북 왕조를 가리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정착한 유대 민족은 솔로몬까지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다가 10세기 초 남북으로 분별됩니다. 솔로몬과 그 아들 르호보암의 책임이 결정적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BC722년 북왕조가 앗시리아에게 멸망 당합니다. 남유다도 BC587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BC620년경부터 580년경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북왕조는 이미 100년 전에 멸망하였고 남유다도 풍전등화 같은 신세고 예레미야는 남유다의 미래를 어느 정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희망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 거의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외쳤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왜 구차한 신세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역사에 찾습니다. 그 출발이 남북 분열입니다. 1절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라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북이 분열된 후 각각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이념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남유대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 북이스라엘은 대중성이 있습니다. 서로 정당하다 주장하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각각 멸망하고 맙니다.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서로 대적하던 분열의 역사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남유다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다고하는 하지만 지파들 사이의 갈등은 전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절까지도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세상을 해명하고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느쪽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근원적인 사건을 꺼냅니다.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2). 네, 출애굽과 광야사건입니다. 출애굽은 12지파 가리지 않았고 지역 갈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 생존을 보장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가 되었을 때 그 은혜의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그것에 대한 열정도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아무도 하나님이 행하신 출애굽과 광야의 만나를 통한 은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마리아'(5)와 ‘에브라임'(6)을 언급하십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은 남유다를 가리킵니다. 둘이 아니라 모두 다입니다. 하나님께 나가자고 외칩니다. 4절의 내용은 출애굽 구원 사건의 감사 행위입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통해 다시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교만하고 사치스럽다 해도, 또한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실 영적 생명의 세계를 외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노래합니다. 분열과 적개심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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