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목사 / 누가복음 3:15-17,21-22

설교본문: 누가복음 3:15-17,21-22
설교제목: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3장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21 백성이 모두 침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설교요약)
오늘은 주님이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요한은 당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종말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오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죄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죄 없으시면 회개의 세례가 필요없지요.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에게 세례받았다는 말을 뚜렷하게 기록하지 않습니다(21-22).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내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하는데 주께서 내게로 오십니까?'(마태3:14) 말합니다. 요한 역시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마태3:15)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 첫째가 하나님의 공의인데, 쉽게 말하면 의는 정당한 몫을 돌리는 것입니다. 상 받을 사람 상 받고, 벌 받을 사람 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이 모든 불의를 바로잡아 되돌려놓으십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예수님이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불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의 세례가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두 번째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대해 신실하신 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시려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죄많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대표로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참된 대표, 즉 메시아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보여주시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창조하신 이스라엘을 통해, 실은 그 대표이신 예수님을 통해 신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사건 속에 하나님의 의, 그 중에서 두 번째 의,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죄없으신 예수님이 당시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세례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21-22) 하늘이 열렸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묵시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그 위에 강림했습니다. 이사야 42장에 의하면 여호와의 종 메시아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이어서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시편 2:7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에 대한 반영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공의뿐이었다면 죄없으신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메시아로 오실 필요도 없고,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공의 앞에 각자의 죄로 심판받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살렸습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의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공의로운 삶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약속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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