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누가복음 4:14-21
설교제목: “하나님 말씀의 성취”
누가복음 4장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설교요약)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공적활동을 시작하십니다. 그날 본문 말씀이 이사야61:1,2입니다(누가4:18-19).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설할지 귀기울였겠지요? 그 설교의 시작이 21절입니다.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500여년전 선포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지금 여기 모인 그들에게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모인 청중들은 ‘아멘’ 응답했을까요? 수군거리고(22) 예수님을 벼랑으로 끌고 가 밀려고 했던(29)것을 보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거부한 것 같습니다.
이사야 61:1,2절 말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복음)을 전하는것’(18a)을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가난한 사람은 다른데서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만을 희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의해 세상가 자신의 운명이 달라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온갖 것에 희망을 두고 삽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사야에서는 가난한 자를 세 부류로 열거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입니다(이사야61:1). 누가복음에서는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로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삶에 지친 사람들을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내용을 압축하여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19)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는 안식일과 안식년에 기초한 희년을 가리킵니다. 희년에는 가난으로 인해 벌어졌던 모든 왜곡된 억압 구조가 해체되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팔렸던 땅도 돌아가고, 종으로 팔렸던 사람도 해방됩니다. 50년만에 돌아오는 희년은 인간 해방의 해입니다.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에서 오늘 성취되었다’고. 두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도 이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또 하나는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통해 인간 해방이 실제로 실현되었는가?
예수님의 공생애 전과정은 이 말씀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귀신을 고치고 병자를 고치는 것도 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것은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부자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누가6:20-21,24). 희년의 선포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었을까요?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칠 것이며, 반대로 비천한 자를 높이고,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할 것이라(1:51-53)는 말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부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의 눈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현실성 없어보여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그 통치를, 그 다스림을,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합니다. 죄와 죽음은 우리를 억압하는 악한 세력의 본질입니다. 우리를 포로 삼고, 우리를 눈멀게 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일용할 양식만으로 삶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별로 심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삶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삶이 불안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운명이 곧 가난한 자에게 전파될 복음이며 희년의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고,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