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예레미야 1:4-10
설교제목: “예레미야의 하나님 체험”
예레미야 1장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9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설교요약)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한 시대는 유대의 격변기였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기원전 609년과 587년은 중요합니다. 609년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름 개혁운동에 박차를 가했던 요시야 왕이 죽은 해입니다. 587년은 요시야의 뒤어 이어 20여년 동안 차례로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야호야긴, 시드기야가 나라를 지키는데 실패하고 바벨론에 의해 유대가 멸망 당한 해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조국 유대가 서서히 그러나 어떻게 손 쓸 수 여지없이 멸망의 길로 빠져드는 상황 앞에서 좌절과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에게, 민중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위협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적대감만 커져갑니다. 예레미야는 옥에 갇히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위기도 여러 번 겪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줄기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웬만하면 포기할만도 한데 그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초토화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매달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레미야의 영혼을 붙든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4절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b에서도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소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개역)’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는 그 말씀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이 자기의 안일에 위태로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 선포가 자기 민족을 살리는 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아주 특별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어떤 힘에 사로잡힌 겁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소명 앞에서(5)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6)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말씀 앞에 선다는 것, 하나님 경험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경험은 낯선 경험이기에 두렵습니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이런 하나님을 당시 국내외 정치적 현안에서 경험합니다. 그가 전해야 할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역사는 그들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역사의 신비한 차원을 들여야 본 것입니다. 그대로 선포하면 미쳤다는 말을 듣습니다. 반역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활동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구원)해주겠다”(8) 이 말씀이 예언활동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9b절에서 “내 말을 내 입에 맡긴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바로 여호와의 말씀 자체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인 말씀도 하십니다. 예레미야를 세워서 여러 나라와 왕국을 세우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한다고 하십니다(10).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뻤을까요? 예레미야의 심정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말씀을 입에 붙여 주셨기에 전해야 하는 그것이 예레미야의 하나님 체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