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예레미야 17:5-10
설교제목: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예레미야 17장
5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9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10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설교요약)
갈림길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엉뚱한 길로 가지 않으려면 갈림길 앞에서 멈추고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할까?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이 의로운 길과 불의길, 선한 길과 악한 길처럼 선명하게 나누어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 선악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똑같이 아름답고 좋은 이유가 있는 두 길을 얘기합니다. 다만 우리는 두 길 중 하나밖에 갈 수 없는 여행자라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사회는 흑백논리로 가득합니다. 단순한 선택의 문제도 매사에 선악의 문제로 구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정파나 어떤 후보를 선택하는 문제를 선악을 선택하는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매사 하나님과 연결시키기에 어느 정파나 어떤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다른 정파나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한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이게 옳을까요? 어떤 정파나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계시라고 하는 이는 거짓 예언자로 여기셔도 좋습니다.
9절에서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이 거짓되고 썩은 마음의 소유자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일 때 그 말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10절에서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시는 분은 나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길, 선한 직장, 선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선택을 잘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해 보이는 길, 선해 보이는 직장, 선해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왕국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민족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구축한 민족 이데올로기, 빗나간 예루살렘 성전 신학, 견고한 다윗 왕조 시스템이었습니다. 다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상숭배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5절,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절에서 저주 받은 그들이 마치 사막의 가시덤불(떨기나무/ 저주와 떨기나무의 어원이 같음) 같다고 하십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복을 받습니까? 예레미야는 민족의 이데올로기나 그릇된 성전신학, 눈먼 다윗왕조 시스템과 같이 사람이 만든 체제를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