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병리 내친구
구자임
문막면 취병리 높은 산자락 아래 53년 지기 친구가 살고 있다. 대학 때 한반이고 현직에서 두 번이나 함께 근무했다. 사월의 우아한 목련과 같고 백합 같은 내 동무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 집 앞에는 넓고 긴 밭이랑이 그의 취미의 농사터인데 고추 감자 옥수수 기타 등등 참 많이도 심어 키운다. 그는 늘 퇴직하면 조용한 시골에서 농사지어 푸른파릇한 채소를 먹으며 살고 싶다 하더니 그 소원을 이루며 살고 있다.
힘들게 농사 진 감자며 모든 곡식을 봉다리 봉다리 싸서 택배로 보내준다. 미안하고 감사하다. 뭐든지 나눠먹고 싶은 친구의 사랑에 코끝이 찡하다. 내 환갑잔치에 친구를 위해 ‘사우’ 노래 못 불러준 것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단다. 지금은 환갑 했다면 욕먹을 때지만 그 때만 해도 중간지점이 아니었을까싶다. 우린 친하면서도 카톡 할 때도 늘 존칭을 쓴다. 서로 존경하고 존중해주는 친구니까. 아련히 그리우면 유튜브에서 명곡이나 가곡을 함께 공유한다.
친구도 권산데 남편을 교회 가자는 소리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한다. 그 나름대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으리오? 늘 조용히 기도하는 진실한 아내의 모습에 남편이 감동되어 큰 결심을 하셨나보다. 주일날 교회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남편이 멋지게 차려입고 부인 따라 나섰다니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벅찬 감동이 아니었을까? 새벽마다 남편들을 전도하기위해 오랜 시간을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많으신가? 그분들의 꿈이 꼭 이루어질 줄 믿는다.
친구도 퇴직하고 22년을 농사를 짓더니 일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정리가 되면 시내 있는 집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그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몸은 기계가 아니니까. 기계도 늙으면 망가지니까. 또 한 가지, 지난여름 심한 장마에 뒷산이 무너져 내릴까봐 혼비백산하여 꼭 필요한 도구만 챙겨 마을 아래 교회에 가서 밤을 꼬박 새고 왔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꼭 나와야 될 것 같다. 맘 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여건은 되니까…
그에게도 나와 같이 교사인 딸이 시집 안가고 혼자 경기도에서 산다. 집에 왔다 가는 뒷모습이 늘 안쓰럽고 아픈 손가락이라 한다. 딸이 나이 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는 것도 나랑 이심전심이다. 물질과 마음의 풍요가 넘치더라도 나이 들어 등 긁어주는 남편이 있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바램을 바람아 전하여 다오.
꽃 같은 시절에 만나 노년의 길을 함께 가는 보석 같은 친구. 그가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