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손에 잡았습니다. 부담감 보다는 제목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장 한장 넘기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난해한 문장들이 보였지만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생각과 상충되는 이야기들이 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은 우리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대상이며 그들의 할 일을 내가 대신 해주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습니다.

오래전 남편의 학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 둘러 앉아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특수반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였습니다 뇌경변 3급인 여자 아이였습니다.
“서하야, 하고 싶은 말이 있니?”
그러자 고개를 끄떡이며,
“하부지 지베 또아지 새끼 하마리 났는데 주겄어요.”
어눌한 발음으로 이야기를 내뱉고 가방을 챙겨 달음질 쳤습니다. 어제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마침 송이지 태어나는 장면을 보다가 안타깝게도 죽게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본인 순서가 오면 이야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소란스런 동거》를 읽고서야 과거 저의 잘못된 생각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발음이 어눌한 서하에 대한 배려로 이야기를 시키지 않았는데 그것이 그 아이에게는 배려가 아닌 상처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장되어 있지만 그들에게는 오히려 우리의 행동이 차별일 수 있습니다. 대신 해주기 전에 공감과 소통을 통해 할 수 있도록 손집아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7:17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분량 대로 은혜를 주셨는데 채워지지 않은 욕심으로 세상 속의 또 다른 나를 세우기 위해 오늘도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모습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쩌면 비장애인인 우리가 장애를 가진 찐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필자는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애인이 온전한 몸의 형태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서로 다른 모습의 지체들이 어우러져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교회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교회가 된 지체들의 삶이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속성과 서로 다른 우리들의 아픔을 공유한 아름다운 동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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