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불을 지르러 온 불”
설교본문: 누가복음 12:49-56
누가복음 12장
설교요약
성경에서 ‘불’을 말할 때 보통 ‘성령’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의 불은 ‘심판’으로 보입니다. 성령이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라면 심판은 그것을 허무는 사건입니다. 사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불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한 말씀일까요? 세상의 악을 보시고 교훈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세상 멸망을 원하셔서 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세상의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는 방식으로 대처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심판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의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판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이 단지 자연원리에 의해 기계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비유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 사이에 긴장이 흐릅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사건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가능할까요?
불을 지르러왔다(심판,49)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50a)고 하십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이미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셨습니다(3:21-22). 이 세례는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는 심판이 아니라 자신이 고난받고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당하게 될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얼마나 괴로울지(50b)를 토로하십니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질 때 좀 더 강력한 힘이 나와서 그것을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과 십자가를 자기가 감당해야 할 세례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일삼는 이 시대의 방법과 다른 길을 선택하십니다. 군사, 경제적 힘만이 정의의 칼처럼 행사되는 이 현실에서 스스로 고난과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으세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리가 말씀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고 하시는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52-53절 말씀을 보면 신앙생활하다가 가족간에 갈등이 생겨 서로 대립되는 양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새겨보면, 참된 평화를 위해 거짓된 평화와 충돌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조건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궁극적인 평화와 어긋나는 것들과 과감하게 대결하는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이면서 저항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불의에 충돌하셨습니다. 거짓 평화의 특징은 ‘위선’(56)입니다. 위선은 자신을 실체 그 이상으로 높이고 살아가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