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요한복음 14:15-21

설교본문: 요한복음 14:15-21
설교제목: “사랑과 계명”

요한복음 14장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설교요약
오늘 말씀의 핵심은 15절, 21절입니다. 키워드는 사랑과 계명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15)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21a).
사랑과 계명 중 어느 쪽이 먼저일까요? 사랑의 능력이 있어야만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지, 계명 실천이 사랑의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되는지의 질문이겠지요? 이 문제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을 위한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천의 책임을 지지않는다면 그 사랑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세상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깊은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랑과 계명 사이에 다리를 하나 놓습니다. 이 다리가 기독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이고, 그 내용이 있어야 사랑과 계명 관계가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16절에서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도록 아버지께 구하신다’고 설명하십니다. 그 보혜사, 즉 위로자로 번역되는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17)입니다. 진리의 영인 파라클레토스의 도움으로 사랑과 계명의 관계 안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제자, 이 셋은 예수님을 통해 연합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연합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운명에 제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걸었다는 뜻입니다. 예수와 연합했다는 진술의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부활은 종말에 실현될 하나님의 궁극적인 생명 사건입니다. 그 생명 사건이 예수님에게서 발생했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으니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서 존재한다는 말이, 예수님과 하나님과 연합했다는 말로 성립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들이 경험한 특별한 생명사건입니다.

  21절에서 사랑을 반복해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도 느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었던 예님이 그에게 살아 있는 자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사랑은 온전한 연합을 뜻합니다. 20절에 표현된 ‘~안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을 불태웠던 ‘하나님 나라’와 정의와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신의 궁극적인 미래와 죽음을 진정성 있게 대면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고,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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