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오 목사 / 마태복음 9:9-13(18-26)

설교본문: 마태복음 9:9-13(18-26)
설교제목: “세리와 바리새인”

마태복음 9장
9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20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했던 것이다.
22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23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25 무리를 내보낸 다음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26 이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졌다.

설교요약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의아한 것이 예수님께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은 얘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그 결과가 십자가 처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상과 불화했다는 뜻이 됩니다.

  마태복음 9:1-17에는 예수님과 충돌한 세 집단이 나옵니다. 1)율법학자들(1-8/신학자) : 예수님이 신성 모독했다, 2) 바리새파 사람들(9-13/목회자) :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 3) 세례요한의 제자들(14-17/수도자) : 예수님이 금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9).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가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제자들도 있었고 많은 세리와 죄인도 있었습니다(10). 당시 죄인은 부도덕한 사람, 극빈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배반자 등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세리도 그런 죄인 중의 하나이고요.

  그 자리에서 바리새파 사람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자기들 말대로, 그 부정한 자리에 바리새파 사람은 왜 왔을까? 이것도 의문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는가?”(11) 예수님과 세리와 죄인은 즐거운 자리인데 바리새파 사람은 불편한 자리였네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12)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13a/호6:6)
3)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3b)
예수님 말씀 중 핵심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목표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으며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버리고 의인 되는 것에만 몰두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인의 삶을 유지하려고 죄인과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연히 의인을 구원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당혹스럽습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바리새파 사람 정도의 수준은 안 되어도 죄인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잘 새겨봐야 할 대목은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사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래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모범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 생각입니다. 자기의(義), 자기 업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를 획득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죄인은 자기를 내세울 것이 없기에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를 드러나기 원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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