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행색의 젊은이가 주일 아침 예배에 나타나 애절하게 호소합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며칠 후 그는 세상을 떠나고 그 교회 목사님이 그의 장례식을 치룹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기도하던 목사님은 성령의 강한 이끌림을 받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에 직면합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라 살기 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이 주제를 가지고 살아보기로 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산다고 할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살아온 가치관, 삶의 행동 양식들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주의 발자취를 따라 살기’로 한 성도들의 변화된 삶이 나타납니다. 신문사 사장은 프로권투 같은 그 당시 인기 있는 기사를 신문에 싣지 않기로 합니다. 유명인사의 추문, 음란기사 등이 실리는 일요일판 신문 발간을 중지하기로 합니다. 그러자 1천여명의 구독자를 잃어 신문사 운영이 휘청거립니다.

철도공작소장은 철도청의 비리를 폭로하다 사직 당합니다. 성악가는 유명한 오페라단의 비싼 연봉 제의를 뿌리치고, 백만장자의 청혼도 뿌리치고 형편없는 천막 속에서 전도집회하는 목사를 돕는 길을 선택합니다. 물론 그로 인하여 많은 술주정꾼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 앞에서 결정한 일들입니다.

이 운동은 점점 확산되어 그 교회만이 아니라 뉴욕 시카고 지역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챤이라고 하지만 사치와 유행에 민감하던 성도들도 이 운동에 공감하게 됩니다. 종교 지도자층들도 호화로운 생활을 청산하고 빈민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구요. 모두 다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중에 십자가 지는 것 같은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이제, 내 인생 황혼에 이르러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삽니다. 살아오면서 겉치레만 번드름한 삶을 살았다 싶습니다. 남은 시간이라도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살아야겠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희생다운 희생의 삶을 살지 못했고 그와 동떨어진 안락과 안일과 이기적이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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