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목을 보았을 때 처음 떠오르는 것은 제가 십년 전에 보았던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의사이기도 한 신부님이 내전이 심했던 국가 남수단에서 사역을 하기 위해 처음 발을 딛었습니다. 그때 참담한 마을을 보고 처음 떠오른 생각이 “예수님이라면 여기에 무엇을 지으셨을까? 예배당일까 병원일까” 이렇게 고민하시다가 “예수님이시라면 학교를 세우셨을 것”이라는 생각했고 학교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 분의 이런 질문은, 종교를 벗어나 진정으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예수님을 알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어찌보면 단순할 수 있고,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가진 재물을 모두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같은 말씀을 통해 이미 우리가 한번쯤은 묵상했던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과연 이런 극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가능할까 의문을 떨칠수 없었습니다. 왜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왜 소설에서나 가능한 허황된 내용이라고 생각할까? 이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 주변에 존재할까? 책을 이해하려고 아니면 책을 마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군분투하던 순간 저의 믿음 생활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나의 행복만을 위한 믿음 생활을 하였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자문하는 그 순간에도 그 질문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제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이 곤란하고 힘든 상황을 갈등없이 빠져나와 내 삶의 손해가 없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습니다. 아무런 희생을 감당함이 없이 풍요한 생활을 누리고,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 삶이 고통스러워 견디기 어려울때는 세상의 죄악과 고통을 스스로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타협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살면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라는 허황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내 개인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우리를 기꺼이 내려놓고 삶의 방향을 철저히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직 제가 무엇을 할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만을 위한 믿음이 아닌, 예수님이 원하는 사회로 변화되는 것이 결국 기독교 신앙 생활에 궁극적인 가치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책 말미에 실업자가 처절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 그 긴 세월동안 노력했다는 개인적인 고백은 헌신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 그리고 순수하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하는 신념을 예수님은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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