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8년째 근무하던 익숙한 부서에서 민원이 많은 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맡은 업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복되는 행정업무와 민원처리에 동료들은 서로 무관심해 보였고, 끼리끼리 어울리고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을 열지 않는 후배들의 모습에 그리스도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년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하심으로 부서 동료들과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맺을 수 있었지만 업무를 하며 부딪치는 업체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부서 특성상 영세한 소규모 광산을 상대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최근 시추사업 지원을 위해 현장에 나갔는데 현장 직원들이 서로 모함하고 일을 미루다 보니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착공기한을 넘겨 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지만, 광산의 도급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시추기사 때문에 기간을 연장해 줄 수밖에 없었다.

  구역장님으로부터 필독서를 건네받아 읽던 중 맥스웰 목사님이 병든 실직자를 만나고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각자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기한을 넘겨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시추작업을 하는 노부부를 조금이나마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일 아니라며 핑계 대는 광산 담당자를 설득해 검사의뢰서를 받아 현장에 급히 나갔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있어야 할 시추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 공사가 끝난다는 전화를 받아서 가겠다고 약속하고 밤에 메시지로도 확인한 터라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해보니 시추기사는 언제 약속했냐고 하며 다음 주에 오는 줄 알았다고 둘러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산 직원들은 시추기사 험담을 쏟아놓으며 현장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세 시간 정도 지나서 시추기사와 아내가 현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안전모와 장비를 챙긴 후 입갱해 심도 검사를 시작했다. 공사담당자가 검측봉을 직접 회수해야 하지만 시추기사 아내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그녀 대신 작업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힘껏 봉을 당기고 조인 부분을 푸는 가운데 시추기사의 장갑이 펄럭였다. 오래전 사고로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안 남아 제대로 펜치를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펜치를 대신 잡고 돌리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50년 넘는 시추경력이 있으며 정식 기술교육을 받아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랑을 했다. 오래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도 시추 공사를 했고 사기를 당해 몇 번이나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추억도 이야기했다. 흙탕물 속에서 잠시 일을 도우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운데 내 안에 감사함이 찾아왔다. 예수님이 깜깜한 갱도 안에서 함께 하심을 느꼈다.

  책 후반부에서 펠리시아는 빈민가에서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이것이 저의 복음이기에 저는 그것을 끝까지 따라갈 거예요”라고 당당히 선포했다. 나 역시 주께서 지금 허락해주신 일터에 감사드리며, 보내주신 영혼들을 섬기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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