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통해 나의 오랜 고민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사십시오. 손해 보기를 기꺼이 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십시오!” 라고 하실 때마다 쉽사리 ‘아멘’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가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였다. 나의 오랜 궁금증에 대한 응답 같아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혹자는 이 책이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며, 우리의 희망과 염원을 가득 담아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의 전 재산을 잃을 법한 위기에서 예수님이 실을 법한 기사들만을 다루는 노먼 사장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가 위협받고,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서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파워즈 소장을 보며, 자신의 전재산을, 자신의 재능을, 빈민가의 빈민들을 위해 쓰는 미스페이지와 레이첼을 보며, 일종의 희열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결단을 드리고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찬양단원으로서, 늘 나의 생명까지 주께 드리겠다는 찬양의 가사를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알고, 눈물 흘리며 진심으로 부른다. 그러나 매일을 살아가는 삶에서는 다시 나와 가족의 안위가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손해보기를 꺼려하는 무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나와 마주할 때면 ‘과연 진짜 크리스천이 맞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누구인가?’ 믿음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모습과 처지로 살아가지 않겠는가? 죄된 본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것이 더이상 거듭난 크리스천에게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아, 예수님의 거룩한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말 그대로 새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하나님께 맡겨야 할 영역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분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들을 좇아 아이들을 교육하고, 나 역시도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에 휩쓸려 줏대 없이 아이들을 키워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한다.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나의 양육관과 교육관에 적용해 본다.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했던 조바심에서 벗어나, ‘지금 이 때에 아이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부모로서 무엇을 가장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할지’부터 예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가르쳐 주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하셨다. 우리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여호와를 바로 아는 데에서부터 온다. 내 자녀를 특별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었던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다. 여름 수련회를 마치고, 내게 한 권의 성경동화를 갖고 오며, 읽어달라고 권했던 첫째의 청을,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인으로 알자. 하나님과 예수님을 나부터 바르게 알기에 힘쓰자. 내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겠는가? 아이들에게 바른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는 부모가 되겠다 다짐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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