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서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언젠가부터 찬양을 부를 때 나는 과연 내가 부르는 찬양처럼 살 수 있는가? 내 생명을 드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때론 우리를 조롱하고 때론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보다 더 높은 도덕적 가치와 너그러움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렇듯 이중적인, 혼란한 세상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성도가 있을까?

이번 여름방학 구역필독서의 제목을 보고 반가웠다. 위 물음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갈까? 이야기의 시작은 오랫동안 실직상태의 초라하고 남루한 떠돌이 사내가(아내는 넉 달 전에 죽었고 딸아이는 다른 집에 맡기고) 직장을 찾아 떠돌아 레이몬드 시의 제일교회에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그는 부르짖듯이 처절한 목소리로 산업의 발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실직하고 굶어 죽고 자살하는 빈곤한 삶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여기는 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죽는다. 그의 말과 죽음이 도전이 되어 목사님과 성도들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묻고 답하며 살아보기로 결단한다.

결과는 금전적 손해, 명예와 인기를 포기하는 것, 심지어 직장을 잃기도 하는 손해보는 삶이었다. 그들에겐 고난의 삶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엔 늘 성령의 임재가 있었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선 다시 실직한 노동자의 관점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다룬다. 가난하고 힘 없고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살기 어려운 자들은 위 물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개인적인 문제보다 사회구조적으로 빈곤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적어도 정직하게 사는 삶, 술이나 마약에 손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은 순교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삶은 요구된다고 본다. 힘든 이웃의, 힘든 가족의, 힘든 친구의 곁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손 잡아 주자. 예수님이라면 분명히 그러셨을거야.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