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는 없고 한국교회에만 있는 좋은 제도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성미(誠米)입니다. 성미는 사실, 기독교 전래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기도미(祈禱米)’라는 이름으로 쌀을 바치는 데서, 무속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정성을 하나로 모으는 상징적 방법으로 여러 사람의 쌀을 모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전통적인 풍습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선교 원칙 중 하나가 자립이었습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님들은 목회자가 세워지기 전에도 권서, 조사, 전도인 같은 분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가되 가급적 교회 내에서 그분의 생활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초기 교회는 헌금이 많지 않아 그분들의 생활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정에서 먹는 쌀의 1/10을 덜어 ‘성미’로 바치면 교회 교역자가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성미’와 ‘십시일반(十匙一飯)’이 하나로 모여 목회자의 식량을 책임지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늘 ‘성미’로 지은 밥을 먹으며, 성미를 바친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실 넉넉한 쌀을 퍼다 성미로 바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먹어야 할 쌀의 1/10을 바친 것이니 목회자 가정을 위해 그만큼 덜 먹는다는 것을 목회자도 잘 알았습니다. 떨어져 밥을 먹고 있지만 한 쌀독의 쌀을 먹는 관계로 살며 성도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듯 백 년 넘게 지속되어 오던 좋은 ‘성미’ 제도를 우리 교회는 금년 말로 종지부 짓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우리 교회 건축 이후 성미 하는 분은 점점 줄어 현재 한두 분 정도만 하십니다. 집에서 먹는 쌀의 양이 많지 않아 덜어 오기도 그렇고, 목회자도 옛날과 달리 먹을 것이 없는 시대가 아니기에 참여자가 주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정성스럽게 성미 하는 분들이 스스로 그만하실 때까지 성미 제도를 유지하려다 지금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더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만 성미의 양이 많지 않다 보니 성미 함에서 오래 묵게 되는 등 관리가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미 하는 분들의 정성이 오히려 훼손되는 것 같아 이제 성미 제도를 접습니다.

지금까지 성미 하셨던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한 시대의 제도가 필요를 다해 사라집니다.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도 어느 시대가 되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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